경상도

문경새재, 하늘재 7.24

트렉매니아 2011. 8. 22. 00:26

< 문경새재(조령) > 경상북도 문경.
문경새재는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감각을 지닌 소중한 흙길이다.
조선시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가장짧은 고갯길이 새도 쉬고 넘는다는 새재다. 약 9km 전 구간이 흙길로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최우수상을 받은 길이다. 백두대간의 조령산을 넘는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문화,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을 설치하고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새재(조령)은 옛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넘던 과거길이기도 하다. 옛부터 영남에서는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갔는데,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추풍령과 북쪽의 죽령 그리고 가운데 새재가 있는데 영남 선비들은 새재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과거에 미끄러진다는 금기가 있어, 문경새재를 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흘관(제1관문) 주변에 세워진 KBS 사극 촬영장은 부지면적 2만평에 고구려,고려.백제왕궁과 당시 기와집 48동, 초가집 47동을 건립한 국내
최대규모의 사극 촬영장으로서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 조령3관문: 1999년 백두대간을 할 당시 지나쳤던 제 3관문이다.

이때 휴양림을 살짝 구경하고 지나쳤는데 언젠가 휴양림에서 하루 지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책바위

이곳을 돌며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을까?

청운의 꿈을 안고 새재를 넘나들던 수험생들의 간절한 소망을 빌며 돌았으리라...

▲ 낙동강 발원지의 한 곳

▲ 화전민터를 복원했다.

▲ 조곡관(제2관문)앞에 있는 조곡약수

▲ 조곡관(제2관문)

 

▲ 산불됴심 표지석

 

▲ 제1관문(주흘관)

< 최초로 열린 옛길 하늘재 > 문경 관음리. 충주 상모면
충주 계립령 하늘재는 충주 미륵사지에서 경북 문경 관음리를 동서간 연결하는 옛길로 삼국사기에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3년 (156년)에 죽령과 추풍령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냈다. 죽령보다 2년이 빠른 한반도 최초의 길로써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재, 지릅재, 닷돈재를 합해 계립령이라고도 한다. 이름만 봐선 하늘과 맞닿은 높은 고개 같지만, 실제로는 해발 고도 525m로 그리 높지 않다. 하늘재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이곳을 통해 신라는 중원을 꿈꿨고 고구려와 백제는 남녘 바다를 도모했다. 세력 다툼의 접점인 탓에 싸움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재는 고려시대에 ‘대원령(大院嶺)’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교통로로 더욱 발전한다.
주변에 미륵사, 관음사 등 대형 사찰이 세워지고 큰 역원과 함께 산성들도 축성된다. 조선 들어 문경새재가 열리면서 하늘재는 그 효용이 떨어져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져 갔다. 거대한 사찰도, 그 옆의 커다란 고려 역원도 바닥의 석물만 남은 채 스러져갔다.

 

< 월악산 미륵사지 >
충북의 월악산 자락과 전북 익산에 같은 이름의 미륵사지가 있다. 익산의 절터가 도회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충주의 미륵사지는 심심산골 외진 곳에 틀어박혀 있다. 차가운 골바람 부는 미륵사지에는 석불과 석탑석등, 귀부 등이 남아 천 년 전 옛 영화를 전한다. 이곳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늘재다. 지금 인적 뜸한 하늘재 아래의 미륵사지엔 키가 10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 지키고 서 있다. 1개의 돌로 조각한 것이 아니고 화강암 덩어리 6개를 탑처럼 쌓아 올려 조성한 석불이다. 부드러운 미소의 석불도 볼거리지만 석불이 들어앉은 돌집이 이색적이다. 석불은 ㄷ자 모양으로 앞이 터진 돌집 한복판에 길쭉하게 솟아 있다. 경주의 석굴암처럼 석굴 안에 석불을 들어앉힌 모습이다. 6m 높이로 석축을 쌓아 석불을 에워싸고 목조로 둥그런 지붕을 만들어 얹었던 ‘지상의 석굴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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