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단풍으로 물든 문경새재

트렉매니아 2016. 10. 31. 10:01

문경새재(2016.10.29)

지나온 길: 조령산 자연휴양림 입구~조령관(3관문)~조곡관~주흘관~주차장(10km, 3시간)


<문경새재>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이화령) 사이의 『새(사이)』, 새로 된 고개의 『새(新)재』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500년간 영남의 관문 역할을 했던 새재.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추풍령과 새재, 죽령 등 3개의 고개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이중 새재 코스가 열나흘 걸리는 가장 빠른 길이었고 추풍령은 보름길, 죽령은 열엿새길이었다고 한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유독 새재를 고집했다.

추풍령은 추풍낙엽 떨어지듯 낙방할 것 같고 죽령은 대나무 미끄러지듯 떨어질 수 있어 피했다고 한다.

새재를 넘어 과거를 치른 영남 유생들의 ‘합격률’이 높자 호남의 선비들도 일부러 영남 땅으로 돌아 넘었다는 고개다.

새재에는 고갯길 입구의 주흘관, 중턱의 조곡관, 고갯마루의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이 있다.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으로도 불리는 이 성곽은 임진왜란때 순식간에 한양을 빼앗기자 전란이 끝난 후 부랴부랴 쌓은 것이다.

이 관문은 영남 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 초참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 이라 생각했지만 신립 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그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년) 에 이르러서야 3중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이름한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터만이 남아 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 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장군, 동학과 의병이 남긴 사담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 (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 KBS 사극 세트장 >

연인원 3,000여명이 공사에 참여한 KBS 사극 촬영장은 부지면적 2만평에 고구려,고려.백제왕궁과 당시 기와집 48동, 초가집 47동을 건립한 국내 최대규모의 사극 촬영장으로서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KBS 촬영장에 세워진 건축물 가운데 통일신라 말기의 건물은 지상 120㎝ 높이의 네 기둥 위에 올려져 있어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양식을 띄고 있으며 고려왕궁은 아파트 7층 높이로 고려의 옛 수도인 개성의 왕궁터 만월대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근거로 건립했다 ‘대왕세종‘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등 kbs의 대하사극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다음 카페 '트렉매니아'에서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둘레길 8구간  (0) 2017.03.20
주산지와 주왕산의 가을  (0) 2016.10.31
봉화 춘양목 솔향기길(외씨버선길)  (0) 2016.09.26
주왕산 절골과 주산지  (0) 2016.08.22
영남의 진산 내연산 청하골  (0) 201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