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대리 자작나무숲

트렉매니아 2016. 7. 4. 13:08

원대리 자작나무숲

걸어온 길: 자작나무숲 입구(탐방 안내센터)~MTB임도(3코스)~숲길~자작나무숲~임도~회동마을(안저울)~아이올라팬션~바깥저울~원대리 마을회관(12.5km, 4:20분, 흐리다 맑음)

원대리 자작나무의 발생배경

1993년~ 자작나무숲을 조성하기 시작해서 2011년 3월 인제 국유림관리소에서 숲유치원을 개장하였으며 60ha(600m*600m)면적에 3000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수산리와 원대리 두 곳의 자작나무숲이 조성되어 있고 수산리 자작나무숲이 멀리서 바라보는 관망용이라면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직접 체험하고 만져 볼 수 있는 숲이며, 부대시설(휴식공간, 오솔길, 통나무정글, 그네, 화장실..등)를 조성하여 놓았다.


2012년에 이곳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처음 방문하고 해마다 한 번씩 방문을 했지만 올해 방문의 경우 가장 큰 변화가 이루어진듯 하다.

먼저, 입구에 주차시설이 완비되었고, 화장실이며 입구에 조그마한 가게까지 생겼다.

아무래도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 이런 주차장이 생겼다.

▲ 조그마한 휴게소도 만들어졌다.

▲ 초입에 코스설명이 되어있다.

▲ 대부분은 위 사진과 같이 우측으로 올라가서 원점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자작나무숲을 둘러보고 아랫임도(왼쪽)로 내려온다.

▲ 한적한 아랫임도를 따라 걸었다.

▲ 약간의 오르막길이나 크게 힘든 코스는 아니다.

▲ 3코스로 접어드는 길목

▲ 이틀전 이곳은 100mm가까운 비가 내려 탐방로가 대부분 젖어있고 물이 흐른다. 엄마 손을 잡고 숲으로 향하는 아이.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말 그대로 불에 탈 때 “자작자작”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수피에는 기름성분이 있어 잘 썩지 않고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가므로 화혼이나 화촉등 남녀의 만남과 연관된 이름으로도 불리며 다른 이름으로 화 또는 백화라고도 한다.

추위에 강하고 햇볓을 좋아하는 나무로 크기는 20~25m까지 자란다고 한다.

수피는 지붕을 덮는 데 사용하며,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하여 농기구 및 조각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하며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와 박달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추운지역에서 잘 자라는 대표적인 활엽수로 영하 2~30도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작나무하면 북유럽을 떠올리는데 스웨덴·핀란드·러시아 등에서는 자작나무가 임산자원으로서 중요하다. 핀란드식 사우나탕에서는 잎이 달린 자작나무 가지로 팔·다리·어깨를 두드리는데 이는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고 한다. 나무의 즙(汁)은 자양강장과 피부병에 쓰이지만 도시 공해에는 매우 약하다.

닥터지바고나 차이코프스키 같은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에 늘어서 있는 나무가 바로 자낙나무이다.

이 나무는 무리지어 있는 것이 멋있는데 백두산 원시림의 자작나무 숲은 흰색의 수피로 장관을 이룬다. 한국에서 자라는 같은 속(屬) 식물로는 좀자작나무(B. fruticosa)·박달나무(B. schmidtii)·고채목(B. ermanii var. communis)·거제수나무(B. costata)를 비롯한 10여 종(種)이 있는데 모두 비슷한 용도로 쓸 수 있다.

종자는 가볍기 때문에 멀리 날아갈 수 있고 햇볕을 잘 받는 공간만 있으면 곧 발아하여 자작나무숲을 만든다.

자작나무는 가로로 벚겨지는 하얀(수피)껍질을 가지고 있는데.. 한방에서는 백화피라 하여 해열과 해독하는 성분이 있어 각종염증과 습진치료제로 쓰이며, 또 이 하얀 얇은수피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사랑의 글귀를 전하면 이루어 진다는 옛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단다.

자작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


▲ 3코스입구에서 약 20여분 오르면 자작나무숲에 도착한다.

▲ 하얀 수피가 인상적이다.

▲ 숲유치원 쉼터

▲ 자작나무숲을 거니는 탐방객

▲ 숲교실

▲ 숲을따라 자작나무로 탐방로를 조성했다.

▲ 자작나무숲을 따라 둘러볼 수 있도록 탐방로를 조성했다.



회동마을과 원대초등학교

7만여평에 달하는 회동마을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이곳은 한국전쟁사상 가장 참담한 패전을 기록한 현리전투가 있었던 곳이 바로 코앞이다.

우리나라 국군 제 3군단 vs 중공제9병단 12군,20군,27군, 북한군 제2,3,5군단이 치룬 전투이다.

 

원대초등학교 회동분교는 1963년에 설립되어 1993년 폐교된 하나의 교실로만 통합 운영된 초등학교 건물로 30년 동안 36명이 졸업했다고 한다.


▲ 자작나무숲을 빠져나와 회동마을로 향한다. 이곳은 분지로 예전에는 60가구가 넘게 살었던 삶의 터전이다.

지금은 달랑 두 가구가 사는데 그나마 한 가구는 외지 사람이 이주해와 팬션을 하고있다.

▲ 임도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아이올라팬션이 있다.

▲ 산중에 있는 팬션이다. 잠시 팬션에서 주인분들과 얘기하며 쉬다 다시 길을 나선다.

▲ 자작나무와 회동분교 관련 자료를 모아놨다.

▲ 회동분교

▲ 세월속에 묻혀버린 회동분교

▲ 바깥저울로 나가는 길은 잡목과 풀이 무성해 빠져나가는데 고생을 했다.

▲ 그래도 시원한 계곡이 함께하니 때론 쉼터가 된다.

▲ 며칠전 내린비로 시원한 물줄기가 흐른다.

▲ 음...이것은 무었인가!

팬션 사장님께 들은 얘기가 있어 놀라지는 않았지만 바깥저울인 이곳까지 포장이 된단다.

▲ 마을 포장길을 따라 내려오다 장끼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녀석 사람을 봐도 놀라지 않는다.

▲ 도로를 총총걸음으로 넘어 텃밭으로 들어간다.


원대리 마을회관에서 걷기를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