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소백산 자락길 6자락(온달.평강 로멘스길)

트렉매니아 2015. 11. 30. 09:19

소백산자락6구간: 온달평강로맨스길(12.5km 약 4:00)

소백산자락길은 경북 영주시, 봉화군, 충북 단양군, 강원도 영월군의 3도 4개시·군에 걸쳐져 있다. 또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문화생태탐방로’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고, 2011년 ‘한국관광의 별’로 등극되었다.

영남의 진산이라 불리는 소백산자락을 한 바퀴 감아 도는 은 전체 길이가 143km(360리)에 이른다. 모두 열 두 자락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자락은 평균 거리가 12km(30리) 내외여서 약 3~4시간이 소요되므로 하루에 한 자락씩 쉬엄쉬엄 걸을 수 있어 리듬이 느껴진다.

2009년 1,2,3자락이, 2010년 4,5,6,7자락이, 그리고 2011-2012년에 8,9,10,11,12자락이 완성되어 전국의 자락꾼들을 불러 모우고 있다.

6자락은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길이다. 산책로 아래 굽이치는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치가 탐방객을 따라 다닌다. 산길을 걸으며 화전민의 삶을 엿볼 수 있고 강가에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운치를 보태는 6자락은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하면서 붙여진 온달산성의 역사탐방과 온달관광지를 관람할 수 있다.

 

6자락의 시작은 가곡초등학교 보발분교에서 시작해 보발재까지 도로를 따라 올라와서 임도길을 걷는 코스인데 아무리 겨울이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아스팔트를 걸어 보발재까지 올라오는 것은 무의미해 보여 보발재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 보발재 정상은 해발 540m라 여기서 출발하면 크게 오르막이 없이 수월하게 6자락을 마무리할 수 있다.

온달관광지, 구인사 방향에서 보발재로 오르면 나무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놨다. 전망대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있기에 잠시 들러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보발재 이정표에서 약 100m정도 내려가면 6구간 이정표가 보인다.

▲ 6자락 대부분은 넓고 길이 평탄해 초보자도 수월하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 길 주변에 잎갈나무가 많아 낙옆이 길에 쫙~~깔려있다.

▲ 대부분의 수종이 잎갈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가 많지만 간간히 오래도 소나무도 만나게 된다.

▲ 독특한 모양의 화장실 이 곳도 갈림길인데 이곳은 바로 화전민촌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있다.(임도에서 왼쪽길을 이용한다) 

6자락 코스 정통길로 그냥 임도를 따라간다.

▲ 두 번째 화장실에서 조금만 더 걷다보면 송림숲이 나온다.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를 만들어 놨다.

▲ 화전민촌을 재구성한 곳으로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하루에 6만원에서~10만원까지 다양하고 독체로 빌릴 수 있다.

▲ 너와집, 초가집 다양하다.

▲ 농기구를 보고있으니 예전 시골집에 다 있던 것들이다.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때 사람이다.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맑았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며, 떨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시장간을 왕래하여 사람들이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곧잘 울었으므로 왕이 농담으로 ‘네가 울보여서 사대부의 아내가 되지 못하니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야 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자란 공주가 혼기가 되어 정말로 온달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고, 남편을 당대 최고 장수로 만들었다. 장수가 된 온달은 군사를 이끌고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출정하였으나 아단성 아래서 화살을 맞아 전사하였다. 장군의 결의가 너무 굳어 장사를 지내려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며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는 평강공주의 달램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도 있다.

 

온달산성

사적 제264호. 둘레 682m. 석회암과 사암으로 쌓은 석축산성으로서, 성벽이 산의 정상 부근부터 북쪽을 향해 형성된 경사면의 윗부분에 둘려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의 구조는 주로 내외협축(內外夾築)의 형식을 취해 축조되었다.

▲ 화전민촌을 나와 온달산성으로 향하다보면 온달산성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 떡~하니 온달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 상당히 높고 견고하게 쌓아놨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 장군이 신라가 침입해 오자 이 성을 쌓고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고 한다. 둘레는 683m, 동쪽 높이는 6m, 남 · 북쪽 높이는 7 ~ 8m, 서쪽 높이는 10m, 두께는 3 ~ 4m이다. 성 안에 우물터가 있고, 산 아래 남한강 변을 따라 절벽이 있는데, 이곳에 석회암 동굴이 있다.

▲ 성문은 남문·동문·북문의 3군데가 확인되고 있는데, 통행을 위한 보조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 안에 본래 우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매몰되고 없다. 성 안의 물을 밖으로 빼는 배수시설인 수구가 북쪽 성벽에 있는데 높이 65㎝의 긴 사다리꼴이다. 성 안에서 채집된 유물로서 토기편·기와편·숫돌·철화살촉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토기편들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로 한정되고 있어 그 사용기간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였음을 알 수 있다.

▲ 온단관광지에서 가까워 이곳만 둘러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이있다.

▲ 상당히 보존이 잘 되어있다.

▲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 온달관광지에는 사극드라마 세트장이 있다. 이정표를 따라 나가는 길을 따라 나가면 주차장 및 식당가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