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지리산의 깊은 계곡 칠선계곡

트렉매니아 2019. 9. 6. 09:28

우리나라 3대 계곡 지리산 칠선계곡

지리산의 추성마을은 크게 어름골, 국골, 칠선계곡이 있습니다. 그 중 칠선계곡은 한국의 3대계곡이며, 천왕봉에서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를 간직한 채 추성마을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노선의 대부분이 비법정 탐방로로 장기간 유지되면서 지리산의 마지막 남은 원시림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 추성마을의 유래 >>

추성마을의 유래는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1,500년전인 금관가야부터 시작됩니다. 신라에게 쫒긴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지리산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백성들을 데려와 '성안'이라는 험준한 산세에 '추성산성'을 쌓습니다. 그 대부분은 자연을 이용한 천연의 성이 되고, 일부분 성벽을 쌓게 됩니다.

성벽의 입구는 '석문'으로서 현재는 암석의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바위가 있는데 그 곳에 신라군의 침입에 대한 망을 보던 '망바위'가 있습니다.

망바위에는 석문을 지나 침입을 시도하는 신라군들을 공격하기 위한 둥근 모양의 '투석'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추성마을의 지명은 유래됩니다.

칠선계곡을 가기 위해 지나치는 마을이 '두지터' 즉 쌀창고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광점동을 지나 나오는 곳이 '어름터'인데 얼음창고였습니다.

성안의 서쪽 계곡은 나라국을 사용해 '국골'로 불리웁니다.

이 일대는 지난 50년간 비탐방로로서 접근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일부 산꾼들만 밤에 몰래 드나들던 지리산의 비경들을 품고 있습니다.


칠선계곡을 방문하는 방법은 추성동 주차장에서 출발해 두지동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인 코스입니다. 그러나 칠선계곡은 비선담 이후로 60명 한정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탐방할 수 있고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올라야 합니다. 또한 천왕봉까지 오르려면 하절기만 오를 수 있고 '월'요일만 예약이 가능하며 당일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없으므로 '장터목대피소', '로타리대피소'를 예약해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추성동에서 비선담까지 왕복코스는 그다지 흥미롭지 못하기에 백무동에서 출발해서 두지동으로 넘어가는 코스가 있습니다. 오르막이 조금 있지만 추성동에서 오르는 길보다 더 흥미로운 길을 걸을수 있습니다.

백무동에서 시작한 길은 약 30분 정도 오르막이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지리산

1950년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패잔병 일부가 노고단과 반야봉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백무동 일대는 인민군 사령부가 있던 곳입니다.


'민군사령부 터' 지금은 석축만 남아있습니다.


인민군사령부터를 지나면 빼곡히 자리잡은 대나무숲을 지나게 됩니다.

대나무는 사람이 거주하는 주변에 심고 키웁니다. 추측하건데 이 대나무밭은 이곳에 거주했던 인민군이 생필품을 만들기 위해 심은게 아닌지 생각됩니다.


대나무숲


대나무숲을 지나면 길은 아주 편해집니다. 이후로 잣나무숲을 만나게 되는데 간벌을 하지않아 아주 빼곡하게 들어찬 모습을 하고있습니다.

잣나무숲

잣나무숲이 끝나는 지점은 두지동으로 넘어가는 창암고개입니다. 이곳 능선을 이용하면 칠선계곡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법정탐방로입니다.


두지동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나래가막살이'가 노란 꽃을 피웠네요.

나래가막살이


철다리를 건너면 두지동 쉼터가 있습니다.

두지동 철다


'두지동'은 '뒤주'에서 왔습니다. 즉, 가락국의 쌀창고가 있던 곳입니다.

두지동


두지동은 현재 7-8 가구 정도만 살고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여름이나 되니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니 그렇습니다.

칠선계곡 탐방로


칠선교를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칠선계곡 트레킹을 하게됩니다. 오르막이 있지만 비선담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에 초보자도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다녀올 수 있습니다.

칠선교



칠선교를 건너면 칠성동을 지나게 됩니다. 칠선계곡 마지막 마을터입니다. 현재 이곳은 민가 한채만 남아있습니다.

칠성


칠선계곡에는 선녀와 나뭇꾼 대신 선녀와 곰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녀탕에는 일곱 선녀와 곰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즐기던 일곱 선녀의 옷을 훔친 곰은 옷을 바위 틈 나뭇가지에 숨겨 놓는다는 것을 잘못해서 사향노루의 뿔에 걸쳐 놓아 버렸다.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려 있던 옷을 가져다 주었다.

이에 선녀들은 옷을 입고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그후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해 주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았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사향노루는 뿔이 없습니다.

선녀교


다리 아래가 선녀탕이고 선녀탕 바로 위가 옥녀탕입니다.

잠시 지친 다리를 쉬어가기 좋은 곳입니다.


옥녀탕


옥녀탕에서 약 10분 정도 더 올라 출렁다리를 건너면 일반적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비선담'입니다.

이곳에서 다시 두지동으로 내려와 추성동으로 내려옵니다.

추성동

다음날 얼음골을 걸었습니다.

얼음골은 가락국의 얼음창고가 있던 곳입니다.

탐스럽게 익은 호박


광성동을 지나 얼음골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역시 지리산이다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얼음터에는 민가가 있지만 지금은 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3차례 방문을 했지만 거주 흔적은 있는데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얼음터 민가

푹신푹신한 솔밭 길

천년 고찰 벽송사

벽송사는 신라말경에 창건된 후 조선 중종 경진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碧松 智嚴大師)가 중창, 『벽송사』라하였다고 합니다.

경내에는 보물제474호인 『벽송사3층석탑』과 민속자료 제2호인 『벽송사 목장승』,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벽송당지엄영정(碧松堂智嚴影幀), 경암집책판(鏡巖集冊版), 묘법연화경책판(妙法連華經冊版)등의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벽송사 300년 소나무

벽송사는 추성동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벽송사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서암정사'

서암정사는 벽송사에 따른 암자로 벽송사의 원응 주지스님이 1989년 이곳으로 옮겨온 뒤 화엄경 금자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위에 대방광문(大方廣門: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극락전(極樂殿 :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무수한 불보살이 조각된 부처님의 이상 세계 모습), 광명운대(光明雲臺 : 구름 일듯이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곳), 사자굴(스님들의 수행장소)등을 조각하고 만들어 그 화려함과 정교함, 웅장함이 과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대광방문

서암정사는 일반적인 암자와 조금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암자 주변을 돌로 쌓아 마치 청학동의 삼성궁을 연상케합니다. 또한 암자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쉬어가기 좋은 곳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의탄마을

동국여지승람에 의탄소(義탄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의탄의 여울 탄자를 쓰는 것은 여울목이라는 뜻에서 쓴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숯탄자(炭)를 쓰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도 한다. 이는 가락국 구형왕이 추성에 있을 때 이곳에서 참나무 숯을 굽지 않았나 하는 추측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선조 때 함양 박씨가 살았으며 경주 정씨가 남원에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500년 느티나무

의탄마을은 칠선계곡 등 지리산의 가장 깊은 골짜기들을 품고 있는 지리산 동북산자락 산악활동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의탄마을은 의중마을, 의평마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말이라고도 하는 의중(義仲)마을은 의탄리의 가운데 마을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1박2일 동안 추성리를 중심으로 걸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할 때 중심이 되는 것은 '가락국'과 '빨지산' 이 두 이야기는 알고가면 더욱 흥미롭게 걸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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