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수선화가 가득한 아라메길

트렉매니아 2017. 4. 3. 15:01

서산 아라메길 1구간(2017/4/2)

걸어온 길: 유기방가옥~유상묵가옥, 서산마애삼존불, 개심사~임도~해미읍성(11km, 약 3시간)


서산 아라메길이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지역의 특색을 갖춘 트레킹 코스로 알려져있다.


아라메길 중 가장 먼저 선보였고 서산지역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낸 1구간은 총 18km로 유기방가옥~마애여래삼존상~개심사~해미읍성 주차장까지 이어진 길이다.

서산군 운산면 일대의 동네 시멘트 길을 걸어야하는 초입부분은 차로 구경을 하면 이동하고 개심사에서 해미읍성까지 마지막 구간을 끝까지 걷는다.

시작지점인 유기방가옥의 수선화가 예뻐 수선화 시기에 맞춰 아라메길을 찾았다.

얼마전부터 이곳 수선화가 유명세를 타고 있나보다.

항상 조용한 유기방 가옥 입구 주차장에 승용차가 많이 보인다.


유기방 가옥

산속에 자리한 유기방가옥은 1900년대 초에 세워진 양반가옥이다.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유기방 가옥은 산을 병품삼아 고고한 기운을 드러낸다.

이 고택 주변에 전부터 수선화는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 그 면적을 넓히면서 상당히 많은 수선화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몇 해 전에 방영한 김혜수 주연의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사람들 방문이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 입구부터 수선화가 보인다.


▲ 유기방 가옥

▲ 안채

▲ 뒤뜰까지 수선화가 피었다.


▲ 집 뒤뜰에 피어있는 수선화

▲ 둘러볼 수 있도록 길을 조성했다.

▲ 여유롭게 꽃을 즐기는 사람들



▲ 유기방 가옥을 마주보고 우측 오솔길을 따라 나가면 비자나무가 있다.

비자나무는 입향조 이창주의 증손인 이택이 1675년 현직에 있을때 제주도의 비자나무를 흙과 같이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이다.
비자나무의 수령은 330년으로 예민 이씨 가문의 역사와 더불어 궤를 같이하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나무이다.

▲ 선정묘

선정묘는 조선 2대 왕인 정종의 4째 아들인 선성군의 후손이 이창주가 이곳에 내려와 여러대 머물러 왔는데 이정방,이진백,이택 등 훌륭한 인물들을 배출된 연고로 조선 말경 당초 경기도 파주지역에 있었던 선성군 사당을 이곳에 이건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에 제향을 하고있다.

▲ 여미리 미륵불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1989년 충남 유형문화재 제 132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 용장천을 정비하던 중 발견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불상의 목이 부러져 있던 것을 접착하여 원래 상태로 만들었다.

▲ 여미리 미륵불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유상묵 가옥을 볼 수 있다.

  유상묵 가옥
대지 전체가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후면은 급한 경사지로 되어있다.
대지전면 담장과 사잇담은 막돌담장으로 되어있고, 후면담장은 토담위에 서까래를 걸러 한식기와를 얹어놓았다.
유기방 가옥과 함께 건축미가 돋보이는 전통적인 양반가옥이다.


차량을 이용해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여래입상을 보러 간다. 운산에서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

서산 마애삼존불은 사적 316호인 보원사지 입구 좌측 가야산록에 있는 큰 바위에 조각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오래되고 또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1958년에 발견되었다.

중앙에는 여래입상, 오른쪽에는 반가사유상, 왼쪽에는 보살 입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본존불인 여래입상의 높이는 2.8m이다. 6세기 중엽의 백제작품으로 모두 밝은 미소를 짓고있어 "백제의 미소"로 불리우며, 특히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변하는 특징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신비해 국보 제84호로 지정됐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태안 마애삼존불(보물 제432호)과 함께,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낸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삼존불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그리고 제화갈라보살의 수기삼존불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에 둥근맛이 감도는 윤곽선이나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조각 수법으로 보아 제작시기는 6세기말 내지 7세기 초로 보인다. 특히 이 지역은 백제시대 중국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약 5분이면

  마애삼존불

  빛의 방향에 따라서 얼굴 표정이 바뀐다고 한다.


삼존불을 보고 서산의 유명한 고찰 개심사로 향한다.


개심사

654년(의자왕 14)혜감(慧鑑)이 창건하여 개원사(開元寺)라 하였다. 1350년(충숙왕 2)처능(處能)이 중창하고 개심사라 하였으며, 1475년(성종 6)에 중창하였다. 그 뒤 1740년(영조 16) 중수를 거쳐 1955년 전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람배치는 북쪽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과 무량수각의 당우를 놓고 그 전방에 누각건물을 배치하고 있어, 조선 초기의 배치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명부전과 팔상전 등은 대웅전과 안양루를 잇는 남북 자오선(子午線)의 주축이 되는 일반적 가람배치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건축양식은 다포계(多包系)·주심포계(柱心包系)·익공계(翼工系)의 형식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명필 해강 김규진이 쓴 '상왕산개심사(象王山 開心寺)' 현판

 대웅보전과 5층석탑




▲ 개심사 일주문

▲ 개심사에서 아라메길을 따라 해미읍성으로 넘어간다.

▲ 가장 뒤쪽으로 가야산이 보인다.

▲ 몇 해 전에 화재로 이 일대는 아품을 이겨내는 중이다.

▲ 서해안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한다.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순천의 낙안읍성,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원형이 잘 보존된 우리나라 3대 읍성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다. 그래서 충청도 병마절도가 이곳에 주둔을 한적도 있다. 선조 12년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효종때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해미읍성은 호서좌영으로 지방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조선말에는 대원군이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고 처형을 했던 아픔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성 안쪽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에 300년 된 회화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에서 천주교인들을 처형했다고 한다. 성곽을 한 바퀴 돌 수 있고, 아래로 내려와 관아와 민가, 감옥을 둘러볼 수도 있다. 고을의 관리들이 업무를 보았던 동헌과 관리들의 살림집이었던 내아가 있고,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민가촌도 잘 만들어져 있다.


▲ 해미읍성




▲ 300년된 회화나무



다음 카페 '트렉매니아'에서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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