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함백산과 정암사의 겨울

트렉매니아 2017. 1. 23. 09:50

함백산(1,573m): 2017/01/23

걸어온 길: 만항재~임도~임도3거리~함백산~중함백~샘터사거리~적조암입구(6.7km, 3:30분)

함백산(咸白山)은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과 정선군 고한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573m이다. 동쪽은 매봉산(1,303m), 북쪽은 금대봉(1,418m), 북쪽은 대덕산(1,307m)으로 둘러쌓여 면적 약 38만 950㎡(126만 평)의 지역을 1993년 환경부가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제는 2016년 태백산과 더불어 이 일대가 태백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함백산은 황지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진 산이다. 『척주지』에 "대박산 서쪽은 정암(淨岩) 육천이고 육천의 물은 영월에 이르러 큰 강에 흘러들어 간다. 대박산은 태백산 동쪽에 있고 아래 위로 본적(本寂) • 심적(深寂) • 묘적(妙寂) • 은적(隱寂) 등의 암자가 있고 만생백(蔓生栢)과 오엽송(五葉松)이 많이 자란다. 대박산 동쪽은 황지이고, 황지 동쪽에는 연화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에서 대박산의 위치가 지금의 함백산으로 짐작된다.

『삼국유사』 척주부에는 "근대봉 남쪽에 상함백산(지금의 은대봉) • 중함백산(본적산) • 하함백산(지금의 함백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함백산은 세 산을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자장법사는 처음 오대산에 이르러 진신을 보려고 산기슭에 모옥을 짓고 살았으나 7일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묘범산(妙梵山)으로 가서 정암사를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이같은 기록으로 봐서 묘범산과 대박산은 함백산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문헌을 통해서 산 이름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엿볼 수 있는데 『태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묘범산은 '묘하게 높은 산'이라는 의미의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대산(大山)이자 신산(神山)이며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한다. 또한 대박산이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으로 『대동여지도』에는 대박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는 함백산이라고 적혀 있다.[1]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저술한 《산경표》에는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선총쇄록》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 함백산을 가장 편하고 쉽게 오르는 시작점인 만항재에서 출발한다.

▲ 상고대가 피면 참~ 아름다운 잎갈나무숲인데 눈은 왔으나 상고대는 없다.

▲ 만항재에서 산길을 따라 함백산에 오를 수 있지만 조금 더 편하게 오르려면 태백선수촌 가는 도로를 따라 걸어도 된다.

▲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선수촌가는 도로는 제설을 안했는데 올해는 제설을 했다.

▲ 도로에서 함백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약 3-40분 급한 경사를 오르면 함백산 정상이다.

▲ 정상 직전에 바라본 백운산방향

▲ 정상부근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 어제 내린 눈으로 눈은 쌓여있지만 상고대는 전혀 없다.

▲ 갈수록 사람이 늘어난다.

▲ 자리를 피해 적조암 방향으로 길을 나선다.

▲ 중함백, 은대봉, 금대봉, 매봉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약 300mm) 우측에 헬리포트가 있다. 헬리포트 방향으로 내려서면 중함백, 두문동재(싸리재) 방향으로 갈 수 있다.

▲ 멈춰버린 오투리조트


< 5대 적멸보궁 정암사 > 강원도 정선
이 산의 만항재에서 시작된 자장천 계곡에는 5대 적멸보궁[설악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양산 통도사]으로 유명한 정암사(淨巖寺)가 있다. 636년 신라 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 몸에서 나온 사리, 즉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들어 항상 머물러 계신는 궁궐”이란 뜻이다.
신라 선덕여왕시절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중 일부를 받아와 우리나라에 모셨기 때문이다. 불교 초기에는 절에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부처님 사리를 모셨다. 불상을 우상처럼 취급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절이 생길때마다 부처님 사리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포교를 했는데 아무리 부처님 사리가 3말이 넘게 나왔다 하더라도 감당이 안되었다. 결국 불교도 토착신앙과 결합하면서, 또 사리 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불상을 안치시키기 시작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청량산(일명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보살 앞에서 정진하던 중 어느날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이역승으로부터 범어로 된 가르침과 가사, 부처님 사리 등을 받았다고 한다. 이 후 신라로 돌아와 각종 계율을 정비, 법식을 세우고 정기적으로 승려들이 시험을 보게 했으며 과실을 바로 잡았다. 이렇게 율(계율)을 바로 잡은 승려라 하여 “율사”자장이라고 칭하고 있다.

자장율사 주장자(이 주목(朱木)나무는 1,300여 년 전 신라의 자장율사가 여기에 정암사를 세우시고 평소 사용하시던 주목 주장자를 땅에 꽂았는데 여기에서 뿌리가 내려 큰나무로 자랐다 한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나무가 늙어 고사하였으나 그 곁뿌리 하나가 생명을 이어 지금까지 스님의 혼을 증명하고 있는 듯 하며 주목 한 그루가 오랜 세월 스님의 법맥을 전하고 있다.


▲ 주장자가 뿌리를 내려 자라다 죽고나서 일부가 다시 자랐다는 주목




▲ 수마노탑에 오르기 위해 약 4분정도 계단을 올라야 한다.

▲ 수마노탑

▲ 탑돌이를 하는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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