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순천 낙안읍성

트렉매니아 2016. 12. 19. 10:44

<<낙안읍성>>

고려시대 후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조선태조 6년(1397년) 절제사 김빈길이 이곳에 흙으로 읍성을 쌓은 것이 시초로,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읍성들 가운데 가장 완전히 보존된 것들 중의 하나이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세종 6) 9월부터 토축의 읍성을 석축으로 고치면서 본래보다 넓혀서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곽의 길이는 1,410m, 높이 4∼5m, 넓이 2∼3m로서 면적 41,018평으로 성곽을 따라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호환(虎患)이 잦아 폐쇄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고 현재 동문[낙풍루(樂豊樓)], 남문(쌍청루), 서문이 남아있으며 동문의 상태가 가장 잘 남아있으며 당시 성안에는 우물 2개와 연못 2개가 있었으며, 성밖의 해자(垓子 : 성밖으로 둘러 판 못)는 파지 않았다.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신청하고 낙안읍성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송만갑 국창>

가왕(歌王)으로 불리던 큰할아버지 송흥록, 할아버지 송광록, 아버지 송우룡 등 3대조가 모두 동편제를 업으로 삼아 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 영향으로 4세부터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13세 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재롱으로 불러본 것이 청중을 감동시켜서 명창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으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활발하고 발랄한 소리를 좋아하여 자기 가문의 고매한 판소리에서 이탈하였다. 판소리에서 동편제에만 구애받지 않고 경기도 향토음악제인 경제(京制)를 많이 활용하였다. 이것이 가문에서 문제가 되어 할명(割名)을 당하였다.


▲ 낙풍루(동문)

▲ 계획도시라 그런지 동문과 서문으로는 대로가 있다.

▲ 돌담이 인상적이다.

<오태석 명인>

조선말기 판소리 고수 및 가야금산조 병창인 오수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서전에서 순천시 낙안면에서 출생하였다고 하는 송만갑 국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고 박덕기 선생으로부터 가야금을 배운 오태석 명인은가야금 병창의 최고봉으로 추앙받고 있다.

제자로 안숙선, 강정숙 등이 서울에서 가야금 병창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 오태석 명인 가옥

▲ 객사

▲ 동헌


▲ 이엉을 새로 하고있다.

▲ 연자방아

▲ 대장금 촬영장

▲ 쌍청루(남문)

▲ 옥사

▲ 물레방아


▲ 대장간

▲ 임경업장군비각

2년동안 군수로 부임해와서 선정을 배풀었다한다. 왼쪽에 선정비가 있다.

▲ 성곽을 따라 낙안읍성 마을을 돌아본다.

▲ 며칠 쌀쌀한 날씨가 풀리면서 산책하기 아주 좋은 날씨였다.

▲ 동헌 뒷쪽

▲ 서문앞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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