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8/8
지나온 길: 백양사 주차장~백양사~약사암~영천굴(왕복)(약 6km, 2시간)
노령산맥 백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고찰로 대웅전과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의 암벽 및 식생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혀 왔을 만큼 이름난 곳입니다.
여느 절처럼 산속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으나 동시에 커다란 계곡과 연못을 끼고 있다. 또한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초록이 흐르는 신록, 가을에는 백암산의 오색단풍, 겨울에는 산사의 겨울풍경이 사계절 사람들의 발길을 향하게 하는 절이기도 하다.
백암산에 위치한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 여환이 처음 지은 절. 이후 여러 차례 다시 지어지기도 하고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는데, 지금의 백양사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7년(1574) 환양선사가 절을 다시 지은 이후부터이다. 환양이 절에 있으면서 매일 『법화경』을 읽을 때 흰 양이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지자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쳤다 한다.
▲ 날씨가 덥다보니 포장길보다 약수천옆 걷기 좋은 길로 올라간다.
▲ 가을이 오면 애기단풍이 참~ 예쁠 것 같다.
▲ 멀리 백학봉이 보인다. 언제봐도 참~ 멋지다.
▲ 쌍계루와 백학봉
쌍계루는 고려 삼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중 한 분인 포은 정무주 선생이 백양사를 방문하여 지은 시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고려말~
내용인 즉, "어느 때야 편안한 마음으로 그대(임금)를 모시고 쌍계루에 오를 수 있을까?"라며 임금과 나라를 걱정하는 시를 지었다.
▲ 쌍계루를 지나 약사암으로 향하는 길목
이후 500m정도의 급경사 산 길을 올라야 약사암에 오를 수 있다.
날씨는 무덥고 습해 온몸이 금새 땀에 젖어온다.
▲ 백양사 약사암
약사암은 학바위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백양사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예로부터 이름 높은 스님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라 한다.
인근에 영천굴이 있어 백암산의 감로수가 나오는데, 만병통치의 약수로서 그 효험이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백양사에 대한 전설이 깃든 장소로서, 환양선사가 전국의 스님들에게 설법을 베풀 때 흰양이 같이 듣고 환생한 후 정토사가 백양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 영천굴 감로수
▲ 영천굴로 오르는 오르막
▲ 약사암에서 바라본 백양사
▲ 고불총림 백양사
일주문에는 "白巖山 古佛叢林 白羊寺(백암산 고불총림 백양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고불총림】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특히 선찰(禪刹)의 경우 이름으로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도 한다.
어렵다 ㅜㅜ
지도론 삼(智度論 三)에 의하면 '승가(僧伽)는 중(衆, 무리의 뜻)의 뜻이니 많은 비구가 한 곳에 화합하여 머무는 것을 승가라고 한다. 마치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을 林이라 함과 같으니, 승취(僧聚)가 모여 사는 곳이므로 총림이라 한다.'고 하고 있다. 즉 지금의 선원(禪院), 선림(禪林), 승당(僧堂), 전문도량(專門道場) 등 다수의 승려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칭하여 총림(叢林)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로 우리나라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5대 총림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1947년에 만암 큰스님께서 고불총림을 개창하셨다.
백양사 고불총림은 6.25 전란으로 안타깝게도 소실되어 1980년 이래 복원을 시작하여 1996년엔 서옹큰스님께서 다시 총림으로 공식 승격시켰다.
▲ 백양사 경내에 핀 상사화
상사화[相思花]
개가재무릇이라고도 한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으므로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한다 하여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개난초라고도 한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비늘줄기는 지름 4~5cm의 공 모양 또는 넓은 달걀꼴이고 겉은 검은빛이 도는 짙은 갈색이다. 관상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여 사용한다.
▲ 백양사 보리수
우리가 아는 보리수와 달리 인도보리수는 보오나무라 부른다.
뽕나무과에 속하는 교목으로 그 잎이 하트형이다. 하긴 우리가 아는 보리수는 입이 조금 길죽하다.
▲ 경내에서 바라본 백학봉
▲ 대웅전 뒤에 있는 9층 석탑으로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 고불매(古佛梅)
이 매화나무 고목은 매년 3월 말경에 진분홍빛 꽃을 피우는 홍매(紅梅) 종류로서, 꽃 색깔이 아름답고 향기가 은은하여 산사의 정취를 돋운다. 아래부터 셋으로 갈라진 줄기 뻗음은 고목의 품위를 그대로 갖고 있으며 모양도 깔끔하여 매화 원래의 기품이 살아있다.
대체로 1700년경부터 스님들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100m쯤 떨어진 옛 백양사 앞뜰에다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고 한다. 1863년 절을 이쪽으로 옮겨 지을 때, 그때까지 살아남은 홍매와 백매 한 그루씩도 같이 옮겨 심었다. 그러나 백매는 죽어 버리고 지금의 홍매 한 그루만 살아남았다. 1947년 부처님의 원래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을 결성하면서 고불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게 된 나무로 역사성과 학술적인 가치가 크다.
▲ 백양사 비자나무 숲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 등에서 자란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는 구충제 및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데 쓰인다.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는 전라남도 장성의 백양사 주변에 8∼10m에 달하는 비자나무 5,0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비자나무가 자라는 가장 북쪽에 있는 숲이라고 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현재는 이 지역보다 더 북쪽에 있는 내장산에서도 비자나무 숲이 발견되었다.
이 숲이 형성된 유래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 때 각진국사가 당시 유일한 구충제였던 비자나무 열매로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절 주변에 심었다고 하며, 실제로 1970년대까지도 스님들은 열매를 거두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는 우리 선조들이 비자나무 열매를 의약재료로 사용한 생활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비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지역에 있는 대표적인 숲이므로 식물분포학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갈참나무 무려 수령이 700년이다.
▲ 어마어마한 밑둥
▲ 개상사화
지난 겨울에 다녀온 백양사의 모습
▲ 쌍계루
▲ 백학봉과 쌍계루
▲ 영천굴
▲ 백양사 9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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